‘사람이 태어날 때 꽃이 피고 사람이 죽을 때 별이 떨어진다’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꽃은 인간의 생과 희로애락을 함께 하는 존재다. 꽃은 그 자체로도 아름답지만, 꽃마다 전하고픈 말을 담고 있어 더욱 매력적이다. 개인마다, 또 그 관계에 따라 품고 있는 사연을 꽃으로 대신 표현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실제로 중세 시대에는 기사가 사랑하는 여인에게 붉은 장미를 보내어 말 없는 뜻이나 감정을 전했다. 어버이날과 스승의 날의 상징으로 자리 잡은 붉은 카네이션도 존경과 건강을 비는 사랑을 뜻한다. 이렇게 꽃이 담고 있는 이야기를 ‘꽃말’이라고 한다. 일종의 꽃의 언어인 셈이다. 구구절절한 이야기를 꽃말로 대신하는 것. 이는 꽃과 함께 태어나 살아온 인간의 오랜 본능이다.
이에 관하여 플레르모어를 운영하는 오경은 대표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A. ‘시인이 하는 꽃집’이라는 콘셉트에 맞게 저마다의 ‘이야기’와 ‘이미지’를 결합한 작품을 만드는 플로리스트가 되고 싶다. 꽃은 직관적으로 아름답다. 그리고 아름다움은 어떤 방식으로든 인간에게 위로가 된다고 믿는다. 그러니 거창한 취지가 있다기보다는 그저 꽃과 이 공간을 찾아주는 사람들이 플레르모어를 완성한다고 생각한다.
‘플레르 모어’는 ‘꽃’이라는 의미의 프랑스어와 ‘~이상’이라는 의미의 영어를 임의로 결합한 단어다. ‘꽃 그 이상’이라는 의미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게 무엇인지는 저마다 정답이 다를 것으로 생각한다. 상호명에 대한 질문을 받을 때마다 확실한 답변을 해드리지 않은 이유기도 하다.
Q. 플레르모어의 주 서비스 분야에 대해 소개해 주십시오.
A. 아름다움을 찾는 데에 나이의 제한은 없다. 2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손님들이 오신다. 삶의 양상은 천차만별이고 각자의 사연과 진심은 모두 귀하다는 것, 그러니 그 사연에 충실한 꽃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 플레르모어의 유일한 서비스 전략을 꼽자면 그것 뿐이다.
우선 상품 제작은 기본적으로 예약제로 진행된다. 미리 꽃을 만들어 놓을 수도 있지만, 손님들 저마다의 취향이 다르고 선물의 목적 또한 다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충분한 상담을 진행한 뒤 손님들이 원하시는 색감과 종류, 크기 등을 최대한 고려해 상품을 제작한다. 상품의 신선도를 위해 예약일에 맞춰 새벽 시장에 가려고 애쓰는 면도 있다. 물론 당일 예약도 가능은 하다.
상품 제작은 물론 플라워 클래스도 진행한다. 플라워 클래스는 취미반, 초급반, 중급반, 고급반, 센터피스 전문반, 핸드타이드 전문반, 원데이 클래스 등 다양하다. 까뜨린 뮐러 파리, 런던 지점에서 마스터 디플로마와 런던 플라워 스쿨에서 디플로마를 취득하였다. 이렇게 터득한 테크닉과 함께 한국 소비자의 선호와 취향에 맞춰 플라워 클래스를 진행한다.
손님이 많이 찾는 핸드타이드 꽃다발, 플라워 바스켓이 수업의 가장 기본이 된다. 이 외에도 센터피스, 캔들라브라, 화병꽂이, 테이블 장식, 플라워박스, 리스, 부케 등 다양한 커리큘럼을 진행하고 있다. 긴장하는 초보자분들을 위해 시간의 제약을 두지 않고 스스로 완성할 때까지 기다려드린다.
Q. 플레르모어만의 특징을 말씀해 주십시오.
A. 관계의 특수성과 사연, 궁극적으로 건네고 싶은 진심 등에 대해 충분히 상담하고 상품을 제작하는 점을 꼽을 수 있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 세상에 같은 사람은 없다. 모두가 다른 마음으로 꽃을 건넨다고 믿기 때문에 그 마음을 최대한 꽃의 이미지로 구현하려 한다. 시가 이미지의 장르이듯, 내가 만든 작품 역시 사연의 디테일이 살아 있길 바라기 때문이다. ‘시인이 하는 꽃집’이라는 플레르 모어만의 특징을 좋아해 주시는 이유도 이런 노력을 알아주시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A. 가장 중요시하는 것은 바로 ‘마음’이다. 고객분들과 자본과 기술을 교환하지만, 그것이 우리가 주고받는 것의 전부는 아니라고 믿기 때문이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서로가 꽃이라는 공통분모로 만나 내밀한 감정을 공유할 수 있다. 그 마음의 이미지를 꽃으로 제작하고, 그 꽃이 다시 누군가에게 기쁨이 되는 일련의 과정이 너무도 소중한 추억이다. 서로의 좋은 시절에 다정한 영향력을 주고받는 일, 더없이 값진 일이 아닌가. 그러니 마음에 대한 순정을 지키는 것이 플레르모어의 경영 철학이라고 할 수 있다.
한번은 60대인 손님께서 대형 꽃다발을 주문하신 적이 있다. 주문을 받고 조금 의외였다. 연령대가 높은 손님일수록 가격 측면에서 부담을 느껴 대형 상품은 찾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선물 받으시는 분이 누구냐고 여쭤봤더니 여고 동창이라고 하셨다. 딸로서, 엄마로서, 아내로서 최선을 다하며 살아온 친구가 암에 걸렸다는 말씀도 함께 해주셨다. 디자인과 색감은 자유롭게 만들되, 나이든 친구가 좋아할 만한 꽃다발이었으면 좋겠다는 주문에 고민을 많이 했다.
어째서인지 자꾸만 두 분의 여고 시절을 더듬게 되더라. 50년이라는 세월이 너무도 아득해서 가슴이 저리기도, 경건해지기도 했다. 살아가는 힘인 동시에 짐이기도 했을 모든 관계를 벗어던진 소녀들에게 안부를 묻고 싶었다. 여전히 빛나고 있을 그 시절의 소녀들에게 대신 말해주고도 싶었다. “너희는 끝끝내 멋진 어른이 되었단다. 그리고 그건 오롯이 너희들의 노력 덕분이었어. 지금의 우리가 그때의 너희들에게 고마움을 전한다.”라고.
그 꽃다발의 전체적인 톤은 화이트와 그린으로 정했다. 불현듯 함박눈이 쏟아지는 여름날의 들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메인은 카라였다. 카라의 꽃말은 ‘순수’다. 개인적으로 청춘에 대해 내린 정의가 있는데, 그건 다름 아닌 ‘마음의 늙지 않음’이다. 따로 또 함께 긴 세월을 건너온 친구를 위해 꽃을 선물하는 그 마음이 청춘이 아니면 무엇인가. 선물 받으신 분께 연락을 받고 펑펑 울었던 기억이 난다. 그때 느꼈다. 꽃이 지닌 위로의 힘을.
Q. 꽃다발을 만드는 과정에서 기억에 남는 또 다른 순간이 있다면.
A. 꽃은 참 다양한 사람들에게 전달된다. 부모, 형제, 친구, 애인, 스승, 상사까지 저마다의 특별한 사연을 품고 있는 관계들이다. 한 번은 30대 여성인 고객님께서 주문을 주셨다. 역시나 내 안목을 믿고 자유롭게 만들어달라고 하셨다. 고객님의 인스타그램 피드를 천천히 둘러보니 평소에도 꽃을 굉장히 좋아하는 분이었다. 유독 활짝 웃는 사진들이 많았다. 어찌나 활짝 웃으시던지 보는 사람 기분이 다 상쾌해지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고객님의 미소와 닮은 꽃을 만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경쾌하고 화려한 느낌으로 제작했다.
알고 보니 자기 자신에게 주는 선물이었다. 으레 꽃은 타인에게 선물하는 것으로 생각했던 선입견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고단한 삶을 묵묵히 살아가는 자신에게 격려의 꽃다발을 선물하다니. 정말 멋지지 않은가? 손님의 사진을 들여다보며 만들었다는 말에 활짝 웃어주셔서 참 행복했다. 서로를 바라보며 함께 웃던 그 순간, 왜인지 내가 더 위로받고 말았다. 그날 나도 거울을 보며 이렇게 혼잣말을 했던 기억이 난다. “충분히 잘 하고 있어.”
Q. 실제로 시와 함께 꽃다발을 선물하는 고객도 있나.
A. 자신이 쓴 시와 닮은 꽃다발을 자유롭게 만들어달라는 주문을 받은 적이 있다. 플레르모어 오픈을 준비하면서부터 늘 꿈꾸던 일이 벌어진 것이다. 10주년을 기념하는 시였다. 함께 지켜온 따뜻한 맹세가 느껴졌다. 서툴지만 착한 다짐들에 울컥하기도 했다. 수없이 읽으며 생각했다. 결국, 어떤 것도 이 마음보다 아름다울 순 없겠다고.
‘너라는 하루를 산 지 10년’이라는 분의 진심을 어떻게 다 담아낼 수 있겠는가. 10년이라는 세월에는 두 사람만이 기억하는 청춘의 사랑과 꿈이 담겨 있을 것이다. 결국, 시인이자 플로리스트인 나는 수줍고도 화사한 꽃다발을 만들 수밖에 없다.
고객님과 내가 의미를 새긴 꽃은 리시안셔스였다. 더욱 화려한 꽃들도 활용했지만, 우아한 화형의 리시안셔스가 지닌 꽃말은 바로 “변치 않는 사랑”이기 때문이다. 혹자는 지지부진한 현실 앞에서 꽃말 같은 게 무슨 힘이 있냐고 말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순간의 진심이 그 고단한 일상을 끌어올리기도 하는 법이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의 마음에 빚지며 살아가고, 기어이 서로를 살려주기도 한다. 플로리스트라는 직업을 택한 나 자신을 좋아하게 만들어준 경험이었다. ‘시인이 하는 꽃집’과 가장 잘 어울리는 멋진 추억이기도 하다.
Q. 현재의 사업장과 시스템을 만들 수 있었던 노하우(Know-how)를 말씀해 주십시오.
A. 유럽에서의 생활이 너무도 행복했기에 방배동의 작은 파리를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상투적인 분위기의 꽃집은 콘셉트에서 제외했다. 가정집이었던 곳을 개조하다 보니 품이 많이 들었지만 내 손이 많이 간 공간인 만큼 애착이 크다. 유럽 스타일의 분위기를 많이 참고했다. 파리, 런던, 암스테르담 등에서 공수해온 소품들과 고풍스러운 가구들로 분위기를 연출했다. 일상에 지친 손님들이 이 공간에 머무는 동안만큼은 전혀 다른 시공간을 경험하길 바랐기 때문이다. 다행히 많은 분이 좋아해 주셔서 뿌듯하다.
Q. 플레르모어의 전망과 목표를 말씀해 주십시오.
A. 당분간은 거창한 전망과 목표를 가지기 어려울 것 같다. 워낙 힘든 시기이기 않은가. 고된 시기임에도 꽃으로 마음을 전하고자 하는 손님들을 위해 다정한 사장이 되고 싶을 뿐이다. 그리고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먼 훗날, 플레르모어가 지금보다 더 단단한 기반을 다졌을 그때 이루고 싶은 소망은 있다. 저소득층 청소년들이나 미혼모 등 사회적인 보호가 필요한 분들과 함께 꽃을 만드는 시간을 가지고 싶다.
아름다운 것을 곁에 두며 얻는 마음의 위로는 물론, 그들이 자립할 수 있는 데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면 좋겠다. 아직은 자신의 일상을 꾸리는 것만으로도 버겁지만, 혼자서만 잘 사는 건 쓸쓸한 일이니까. 따뜻한 영향력을 주고받는 삶을 사는 게 플로리스트이자 시인으로서 궁극적인 목표라고 할 수 있겠다.
Q. 해당 인터뷰 기사를 접하게 될 독자에게 전하실 말씀이 있다면.
A. 괴로움도 즐거움도 결국 다 지나가고, 모든 순간은 오직 한 번뿐이다. 그러니 더더욱 순간을 소중히 여기면 좋겠다. 오늘의 사랑과 오늘의 감사를 지나치지 않았으면. 그렇게 다정하게 나아갔으면 좋겠다. 그 끝에 무엇이 있든 개의치 않고 씩씩하게 말이다. 아무쪼록 “인생을 꽃처럼 시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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