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예술은 손끝에서 시작한다. 그런 점에서 예술의 역사는 곧 손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간의 손은 어떤 도구를 만나 어떤 작업을 하느냐에 따라 다양한 작품으로 이어지게 된다. 이 가운데 가장 오래된 기법은 단연 ‘바느질’이다. 인간이 옷을 지어 입기 시작한 구석기 시대부터 시작한 바느질은 생존의 수단을 넘어 이제는 예술의 한 분야로 자리 잡았다.
바느질로 만들 수 있는 작품은 무궁무진하다. 조각천을 이어 붙여 만드는 보자기부터 앞치마, 조끼까지 실생활에서 사용할 수 있는 소품을 다양하게 만들어낼 수 있다. 또한, 한 땀 한 땀 바느질에 집중하는 과정에서 잡념을 잊고 마음의 안정을 되찾게 된다. 이렇다 보니 시대가 바뀌어도 여전히 바느질의 가치를 알고 찾는 사람이 많다.
이와 관련하여 안양시 동안구 호계동에서 생활의정성을만나다를 운영하는 고윤미 대표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A. 생활의정성을만나다는 바느질을 좋아하는 5명의 여성이 의기투합하여 설립한 협동조합 법인이다. 처음 생협 동아리에서 만나 함께하는 바느질의 매력에 빠진 것이다. 바느질한다고 하면 주변에서 단순 취미로만 생각하더라. 처음엔 그랬지만 실력이 쌓이고 보니 이 사람 저 사람이 ‘이것 좀 만들어 주세요’하는 요구가 자꾸 늘었다. 그렇게 조금씩 수익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바느질로 돈을 벌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필요한 재료를 같이 사고, 하고 싶은 것을 맘껏 해보자는 취지에서 아예 협동조합을 만들었다.
특히 결혼과 출산, 육아로 경력이 단절된 여성이라는 상황도 모두 같아서 ‘아’하면 ‘어’할 정도로 통하는 사이가 됐다. 다들 조합을 통해서 사회구성원으로 다시금 활동하게 된 셈이다. 늘 ‘여성이 행복한 기업’을 추구하며 우리와 같은 여성들이 서로 지지하고 연대하면서 함께 행복하게 살아가는 세상을 꿈꾼다.
Q. 생활의정성을만나다의 서비스를 소개해 주십시오.
A. 이곳에서는 바느질 기술을 이용해서 만들 수 있는 소품을 주로 제작한다. 남녀노소 누구나 수제품을 구매할 수 있고, 단체, 기관에서도 주문을 주시곤 한다. 자체적으로 디자인한 상품을 만들기도 하지만 고객의 주문이 있는 경우 맞춤 제작도 가능하다. 다품종소량생산을 주로 한다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공장제 생산을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주문제작상품의 경우 고객이 요구하는 내용을 최대한 제품에 담아 보려 한다. 거기에 전통의 문양을 넣어 포인트 주는 것이 특징이다. 예를 들어, 연봉 단추를 이용한 앞치마, 가락지 매듭 지퍼 고리, 조각보 디자인이 들어간 조끼 등을 들 수 있다. 그래서 주문하는 고객과 파트너십으로 일하는 마음이 중요한 것 같다. 우리를 이해해주시는 분들은 제품이 완성되는 경우 무척 만족하신다.
교육서비스도 하고 있는데, 유치원부터 성인에 이르기까지 원하는 사람들에게 바느질이나 매듭공예를 가르쳐 드린다. 특히 학생, 청소년, 학부모 등 대상에 맞춰 바느질 DIY키트를 활용한 교육을 주로 한다. 개인 수강생도 있지만, 단체나 학교, 기관 등에서 요청이 있을 때면 자격증이 있는 강사들이 직접 면대면 수업을 한다.
최근에는 코로나19로 온라인 강의 요청도 생겨서 진행하고 있다. 코로나19 덕분에 시작된 온라인 바느질수업은 특히 관공서나 기관에서 요청이 있어서 진행하고 있다. 현장교육보다 온라인교육의 경우는 인터넷망과 컴퓨터 환경에 따라 변수가 많아서 늘 긴장한다. 아무래도 바느질수업은 직접 오프라인으로 진행하는 게 수업의 질이나 결과물 등이 더 만족스러운 것 같다.
Q. 여타 유사 업종과 비교해 볼 때의 생활의정성을만나다만의 특징을 말씀해 주십시오.
A. 다른 회사와 생활의정성을만나다 협동조합의 가장 큰 차이점은 ‘평등구조’다. 조합원 각자가 의결권을 갖는 평등구조는 협동조합의 특징이다. 일반기업과 분명히 다른 점이라 할 수 있다. 협동조합은 조합원이라는 이용자들이 소유하는 기업이다. 주식회사가 1주 1표로 권한을 행사하지만, 협동조합은 출자금을 많이 냈든 적게 냈든 의사결정에 있어 1인 1표로 의결권을 갖게 된다.
따라서 조합을 운영하면서 결정할 일이 생길 때마다 모두가 합의되면 그때 움직인다. 남들이 보면 답답하고 어처구니없겠지만 그게 협동조합이다. 함께 일할수록 이윤이 아니라 사람이 중요하다는 점을 더욱 느끼고 알아가고 있다.
또한, 협동조합이다 보니 여러 가지 교육이 동시에 진행될 수 있다. 조합원들이 바느질을 기본으로 하지만, 각자 특기가 있기 때문이다. 규방 공예, 매듭, 자수, 재봉틀 바느질 등 다양하다. 그래서 공방 수업도 하고 교육을 원하는 곳으로 찾아가서 교육을 진행하기도 한다.
A. 무엇보다 우리의 눈높이에 맞는 상품만을 판매하는 것이다. 변화를 따라가되, 유행을 쫓기 위해 기본적인 눈높이를 낮추지는 않는다. 우리 눈에 만족스럽지 못한 상품은 판매할 수 없기 때문이다.
Q. 가장 큰 보람을 느낀 사례나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다면 자유롭게 말씀해 주십시오.
A. 2년 전에 전통공예품을 수출했던 기억이 가장 오래 남는다. 우연히 코트라 독일지사에서 판매처를 연결해주셔서 ‘장님 코끼리 다리 만지듯’ 수출을 했다. 그때 한국전통공예품이 독일에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는 걸 알았다. 그 기회로 독일 코트라 전통공예품 전시회에 작품을 몇 점 출품했는데 파독 간호사, 광부였던 교포들이 보시고 무척 좋아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울 뻔했다. 우리에겐 감동 그 자체였다. 앞으로도 기회가 주어진다면 다시 도전하고 싶다.
최근에는 코로나19로 바느질에 대해 자부심이 생겼다. 바느질에 그다지 관심 보이지 않던 사람들이 마스크를 만든다니 찾아오고 주문을 해주시더라. 처음엔 주변에 선물하다가 단체주문, 교육으로 진행했다. 바느질쟁이로서 이 어려운 상황에 필요한 적정기술이 바느질이라는 것이 정말 뿌듯했다.
Q. 현재의 사업장과 시스템을 만들 수 있었던 노하우(Know-how)를 말씀해 주십시오.
A. ‘버티기’가 노하우라고 할 수 있다. 사실 기업이라면서 해마다 당기순손실을 내고 있으니 운영을 너무 못하고 있는 것이 맞다. 곧 폐업신고라도 해야 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공동체로서 협동조합의 정체성을 잘 살려서 버티고 있다고 생각한다. 처음 시작할 때 각자 가진 재능, 물건, 자금 등을 모아서 소박하게 시작했다. 이렇게 우리만의 공간이 생긴 것만으로도 기적을 경험한 것과 같다.
일하는 방법은 배려가 기본이다. 아직도 육아와 가사 일에서 벗어나지 못한 조합원이 대부분이라서 서로의 사정을 가장 잘 안다. 그러니 배려하면서 서로 돕다 보면 어느새 뚝딱 일이 하나씩 둘씩 끝나간다.
Q. 생활의정성을만나다의 전망과 목표를 말씀해 주십시오.
A. 좋은 협동조합이자 여성 기업이 되고 싶다. 사람들이 협동조합을 잘 모르기도 하고 협동조합을 한다고 하면 선입견을 품고 보기도 한다. 그래서 오히려 그런 편견을 깨고 싶다. 우리는 남들이 하지 않는 것을 먼저 하면서 길을 만들어 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하는 일들은 모두가 실험이고 처음인 것이 많기 때문이다. 그래야 나와 내 친구, 그리고 우리 마을이 행복해질 것으로 생각한다.
Q. 해당 인터뷰 기사를 접하게 될 독자에게 전하실 말씀이 있다면
A. 최근에 인기 있는 아이돌 그룹 멤버들이 한복을 응용한 무대복을 입어 화제가 되었다. 우리로서는 무척 고마운 일이었다. 이때만큼 한복에 사람들이 관심을 많이 가진 적이 있었나 싶다. 우리 조상들은 한복을 손바느질로 다 만드셨다. 그만큼 바느질은 인류와 오래도록 함께한 기술이다. 그래서 남녀노소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수제품에 대한 한국인의 인식이 점점 나아지고 있지만, 아직도 다른 나라보다 낮은 편이다. 수제품이 비싸다고 하는 인식은 그 수고를 잘 모르기 때문에 나오는 것이다. 바느질에 관심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그래서 바느질하는 사람들의 수고가 가치 있고 의미 있다는 점을 많이 알아주시길 바란다. 앞으로도 계속 바느질협동조합으로 남고 싶다. 우리와 같은 고민을 하는 분들이 있다면 도전해보시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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