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한마디 말보다 작은 그림이 더 큰 위로가 되기도 한다. 그림 그 자체를 바라보는 것도 좋지만, 직접 붓을 들고 도화지를 채워나가는 과정 그 자체도 마찬가지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내면에 품고 있던 고민이나 생각을 이미지로 풀어내면서 마음의 짐은 덜고 한결 개운해지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이에 관하여 경기도 의정부시에서 올드랭사인화실을 운영하는 박현지 대표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Q. 올드랭사인화실의 창업 취지를 말씀해 주십시오.
A. 꽤 오래 그림을 그렸고, 디자이너로 수년간 근무했다. 그러면서 점점 무의미해지는 일상에 번아웃도 여러 번 왔고, 힐링이 필요한데 힐링이 뭔지도 모를 정도로 우울해지곤 했다. 그렇게 어영부영 서른이 되고 나니 마치 인생의 전환점인 것처럼 스스로에 대한 고민과 생각이 많아졌다.
결론은 더 늦기 전에 하고 싶은 걸 하자는 것이었고, 더는 수동적인 삶 속에서 후회를 남기고 싶지 않았다. 회사에 다니면서 반려동물초상화 작업을 조금씩 시작했고, 다양한 사람들과 동물들을 만나면서 동시에 꿈을 더욱 구체화해나갔던 것 같다. 어릴 때부터 좋아하고 항상 함께 해왔던 그림이 결국은 돌고 돌아 내 꿈이자 가장 큰 그리움이었다는걸 깨달았다.
어쩌면 이런 생각들은 나뿐만 아니라 모두가 갖고 있는 작은 소망일 것이다. 그래서 그림이든, 어떠한 마음이든 같이 그려보고 싶어서 준비했다. 말 그대로 ‘그리고 싶은 것들을 그리고, 배우고 싶은 것들을 배우며, 여러 감정을 예술이라는 영역 내에서 툭 터놓고 공유할 수 있는 시공간’을 제공하고 싶었다.
Q. 올드랭사인화실의 주 서비스를 소개해 주십시오.
A. 20대부터 60대까지 성인 남녀노소 모두 가능하다. 현재는 20~30대가 주를 이루고 있는데 연령대가 높은 수강생분들도 많이 뵙고 싶다. 그림을 가르치는 입장이지만, 늘 그렇지만은 않다고 생각한다. 함께 그리면서 함께 감정을 나누기 위한 곳이기 때문에 다양한 수강생들에게서 오히려 내가 배우는 부분들이 훨씬 많다.
이곳에는 아크릴화, 수채화, 소묘, 반려동물초상화, 인물화, 오일파스텔, 색연필 등 다양한 과목이 있다. 크기가 큰 캔버스를 제외하곤 재료를 전부 무료로 제공한다. 화실에 마련된 재료가 다양한 만큼 각자 그리고픈 그림들도 다양하다. 이러한 각자의 개성과 감각을 존중하기에 1:1 맞춤 커리큘럼으로 진행된다. 원데이클래스 역시 상시로 진행 중이다. 인테리어와 촬영에 좋은 백드롭페인팅과 평소 접하기 어려웠던 나이프화, 그리고 반려동물 팝아트 초상화가 인기 있다.
Q. 올드랭사인화실만의 특징을 말씀해 주십시오.
A. 특유의 감성과 편안함이 가장 큰 특징이다. 물론 화실이라는 공간 자체가 주는 분위기도 있지만, 한 명 한 명 진심으로 존중하고 소통하며 심리적 편안함을 제공하고자 노력한다. 예를 들어 수업 중 혼자 기다리는 반려동물이 걱정된다면 타 수강생들의 동의를 얻어 반려동물을 데려올 수 있도록 하고, 혼자 집중적인 수업을 받고 싶다면 시간표를 조율해서라도 맞추려 노력한다.
오늘은 수채화를 그렸는데 다음 시간은 다른 재료를 다루고 싶다면 그것 역시 가능하다. 말 그대로 1:1 맞춤 커리큘럼이며 수강생들을 위한 진심이 닿는 순간 편안하다고 느끼시는 것 같다.
Q. 운영에 있어 가장 우선으로 보는 가치관과 철학은 무엇입니까?
A. 무조건 재료를 잘 다루고 그림을 잘 그려내는 것만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올드랭사인은 ‘그리운 옛날’이라는 뜻의 가곡명이다. 그림과 그리움은 단어도 비슷하지만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보통 그리고 싶은 무언가를 떠올려보면 가족, 반려동물, 여행지, 추억이 담긴 장소 등 그리움이라는 감정이 기반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수강생들과 친구처럼 시시콜콜하고 솔직담백한 대화를 많이 하려는 편이다. 각자가 어떤 성향이고, 어떤 일상을 지내고 있으며, 어떤 감정들을 느끼고 있는지, 어떤 그리움이 있는지에 대해 끊임없이 관심을 가지고 존중하려 노력한다. 별거 아닌 수다처럼 보일 수 있겠지만 단순히 그림을 잘 그리기 위해 배우고 가르치는 곳을 뛰어넘어 각자만의 감정과 감성을 맘껏 표출하는 창구인 셈이다.
Q. 가장 큰 보람을 느낀 사례나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다면 자유롭게 말씀해 주십시오.
A. 아무래도 첫 상담이나 수업 때는 쭈뼛거리기도 하고, 어색해하시는 수강생분들이 많다. 점점 수업이 진행될수록 화실에 들어오시는 순간 표정과 자세가 편안해지거나 밝아지는 모습이 보인다. 그때마다 이곳에 오는 것이 하나의 기분 좋은 일상이 되셨구나 싶어 보람을 느낀다. 물론 그림을 배우고 실력이 느는 것도 기쁘지만, ‘선생님이랑 있으면 편해요.’, ‘화실 오고 싶어서 일주일이 너무 길었어요.’ 등 소소한 한 마디에서도 크게 감동하는 것 같다.
Q. 현재의 사업장과 시스템을 만들 수 있었던 노하우(Know-how)를 말씀해 주십시오
A. 사실 나는 겁이 많고 약간의 완벽주의와 더불어 내성적이다. 그래서 새로운 도전을 하는 데에 심적 어려움이 더 컸지만, 가까운 이들의 크고 작은 응원들이 첫발을 디딜 수 있는 엄청난 힘이 됐던 것 같다. 그로 인해 단점이라고 생각했던 성격들을 긍정적으로 바꿔줬다. 겁이 많은 만큼 신중하고, 강박적인 만큼 섬세하며. 내성적인 만큼 경청과 배려를 잘 할 수 있다고 스스로를 믿었다.
실무적으로는 아무래도 어릴 때부터 줄곧 그려온 그림에 대한 다양한 노하우들이 큰 자산이었다. 또 디자이너로 근무하며 쌓아온 여러 소통방식, 창의성, 대처방법 등 경험을 통해 자연스레 다져진 부분들 역시 다방면으로 도움이 되는 것 같다.
Q. 앞으로의 전망과 목표를 말씀해 주십시오.
A. 아직 오픈 초기인 만큼 하루하루 배우며 새로운 일상에 익숙해져 가는 중이다. 앞으로도 계속 좋은 그림을 위한 소통에 대해 고민하며 ‘올드랭사인 화실’을 깊이 있게 꾸려나가고 싶다. 많은 수강생과 함께 더욱 폭넓은 감정과 예술을 나누고자 한다. 그렇게 점점 더 많은 성인의 지친 마음이 조금이나마 치유되고, 일상의 위로 같은 공간이 되었으면 한다. 또한, 개인적으로도 어느 정도 편안해지면 유기동물 봉사를 다니며 직접 만난 유기동물들의 초상화 작업과 멸종 위기 동물들을 좀 더 알릴 수 있는 그림 작업을 하고 싶다.
Q. 해당 인터뷰 기사를 접하게 될 독자에게 전하실 말씀이 있다면
A. 그림을 잘 그리고 못 그리는 것의 기준은 없다고 생각한다. 점 하나를 그려도 스스로 최선을 다했고 만족한다면 그건 잘 그린 그림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 어른들은 어쩔 수 없이 때때로 감정표현에 소극적일 때가 늘고 있다. 또 결과만이 중요해진 만큼 스스로에게 지나치게 엄격해지곤 한다. 사회와 일상에서 이미 충분한 채찍을 휘두르고 있으니 적어도 ‘올드랭사인 화실’에서만큼은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각자가 그림을 그리고 내면을 표현하는 모든 과정을 통해 그간 힘들었던 스스로를 조금씩 위로해주는 시간을 즐겼으면 한다. 그리고 그 행위가 어느 순간 습관처럼, 그렇게 건강하게 스며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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